Ahn Jungho

안정호의 블로그입니다

작품번호가 없는

Sunday, January 04, 2015

어느 작가의 작품이었는지 기억에는 없다. 한 작가의 유고집에서 미완의 유작과 사적인 편지들을 읽으며 작가가 되고 싶지는 않다고 생각했다. 공개하고 싶지 않았을지도 모를 작품과 편지들이 출판업자의 탐욕과 대중의 관음증을 만족시키기 위해 세상에 공개되는 장면을 상상하면서 끔찍해했다. 책 제목은 잊어버렸지만 그 때의 감정이 희미하게 남아있다.

수능을 마치고 입학을 기다리던 추운 겨울에 로만 폴란스키의 영화 ‘피아니스트’를 보았다. 영화의 클라이막스에 독일군 장교 앞에서 연주되는 쇼팽의 발라드 1번보다 더 내 마음을 사로잡았던 곡은 쇼팽의 야상곡 올림다단조였다. 그리고 이 곡을 통해 처음으로 Op. posth라는 표기를 접했다. ‘Opus posthumous’의 약자로 작곡가의 사후에 출판되어 작품번호가 없다는 의미다.

Chopin Nocturne C Sharp Minor Op.posth

유고집을 읽으며 몸서리쳤던 내가 쇼팽의 곡 중에서는 사후출판된 야상곡을 가장 즐겨 듣는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다. 그리고 그토록 연주회장에서 듣고 싶어하던 이 곡을 어제야 실연으로 들었지만 피아노 독주가 아닌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이중주였다는 것도 예견할 수 없는 일이었다. 삶은 종종 알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간다.